도움이 간절했을때가 누구나 있을거 같다. 나는 미국에 첫째를 데리고 이민을 와서 둘째, 셋째를 낳고 키울때, 3살, 2살 터울인 아이들을 혼자 데리고 키울때, 첫째 킨더를 보내고, 둘째 프리스쿨을 보낼때 픽업할때, 늘 셋째 카시트를 들고 다니던때, 세아이가 한번에 같이 울어버릴때, 첫째 둘째의 플레이데이트때 셋째를 낮잠재워야할때. 아이 셋을 다데리고 다닐때. 사실 일상 매순간매순간이 아이 셋이 된 이후부터 챌린지였던거 같다. 그 시절 매순간 터져나오는 눈물을 참았던때가 있었고, 아파도 아침에 일어나서 매번 아침을 준비하고 도시락을 세개 싸야하던대. 사실 아이 셋이 되고부터 지금 셋째가 13살이니까 13년이 사실 제정신이었때가 없었던거 같다.
그때 너무 도움이 간절했다. 아이는 축복인거 너무나 알겠는데, 머리로는 너무나 알겠는데, 나는 너무 버거웠다. 힘들었다.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거 너무 알겠는데 나는 매일 아침마다 눈을 뜨기가 버거웠고 매순간 울음을 참아야했고, 심호흡을 하며 감정을 다스려야했다.
아이가 커가면서 조금씩 그 부담감, 책임감, 버거움, 당혹감이 줄어들고 있지만 그때 세 아이가 어렸을때 매순간 컨플릭트에 시달렸던 그때 나는 공황을 얻었다. 지금은 웃으며 공황이 있다 말할수 있지만 나는 사실 정신적 외상상태이다. 그때의 어려움이 내 마음과 정신에 남아있으니까.
그때 내가 힘들었을때 도움을 요청했을때 교회일때문에 쉽게 갈수 없다면서 부모님들의 “기도할께”라는 말이 아무 위로가 안되었다. 힘들다고 말해도 “해줄게 없구나”라는 말이 너무 무책임하게 느껴졌다. 내 책임이 맞지. 내 아이들이니까. 하지만 나는 무책임한 조부모는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그런 도움을 요청하는걸 포기했다. 주변에 부모님들이 오셔서 육아를 도와주는 친구들이 너무도 부러웠지만 그냥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간절했을때 거절당한 경험은 나를 조금 돌아보는것과 동시에 도움따윈 요청하지 않겠다는 냉정한 마음도 생긴게 사실이다. 간절함은 클수록 실망감이 큰법이다.
사람에 대한 기대를 버렸을때가 이때였던거 같다.
단점은 마음이 냉정해진다는 점이고 장점은 대인관계가 수월해졌다.
쿨해보이고, 그렇게 사는게 편하다. 근데 이것도 사실은 진정한 쿨함이 아니라 결핍인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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